요한계시록 강해 01 계시록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요한계시록 강해 01】 계시록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 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1-3)

 

 

들어가는 말​

 

분명 계시록도 서신서인 것은 사실입니다. 요한 사도가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환상과 사건, 그리고 어떤 순자를 통해 영적인 사실을 상징적으로나, 영적인 시그널로 제시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가 본 환상과 사건들, 그리고 제시된 숫자를 문자적으로 이해할 때 매우 혼란스럽게 됩니다. 계시록에 담긴 환상과 사건, 그리고 제시한 숫자를 대하는 우리에게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계시록이 혼란스럽게 해석되어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성경 66권 중에서 경시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한편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다양한 해석의 원리로 <과거주의적인 해석>이나 <미래주의적 해석> 그리고 <역사주의적 해석>과 같은 해석법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해석으로 오히려 계시록은 우리에게서 더 멀어지게 하거나 계시록을 악용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올바르게 해석할 <영적 역사주의적 해석>을 이해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가 계시록을 대할 때, 다음과 같은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1)첫째, 계시록을 읽어갈 때 어렵다는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상이나 사건, 그리고 어떤 숫자가 상징하는 바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오늘날 우리의 삶에 적용할 때 어렵다는 선입견은 자연스럽게 벗겨질 것입니다. 2)두 번째로 계시록은 다른 성경과 함께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결말에 해당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이 담긴 책입니다. 3)세 번째로 계시록의 구조와 주제를 분명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Ⅰ. 계시록에 담긴 종말에 있을 영적인 상징과 시그널​

 

  1. 문자적 해석을 극복하고 묵시문학적 관점의 영적 상징과 시그널을 취하라.

물론 계시록에는 문자적으로 봐야 할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밧모섬에 유배당한 사실이나, 아시아의 7개 교회의 명칭과 같은 것은 문자적으로 취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 사도가 보았던 환상이나 사건, 그리고 제시된 어떤 순자들은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적 상징과 시그널을 이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묵시 문학적인 성경은 이미 구약성경에서 시작되었고, 그 묵시 문학적 정경이 신약의 시대에 들어와서는 어떻게 성취 되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처럼 구약의 묵시문학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 상징과 시그널>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에스겔서와 다니엘서가 그 예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시록을 문자적으로 접근해서 이해하려고 한다면 커다란 난관에 처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가 보았던 환상이나 사건, 그리고 제공된 어떤 숫자들은 영적인 의미가 담긴 내용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문자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 환상, 그리고 어떤 사건과 숫자들은 영적인 의미가 담신 상징이나 영적인 시그널로 제시된 것입니다. 계시록을 읽는 성도들은 거기에 담긴 영적인 의미와 시그널을 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

 

  1. 환상의 4 묶음에 담긴, 종말에 있을 영적인 의미와 시그널

그러기 위해서는 사도가 계시록에 소개한 각각의 환상들이 의미하고 있는 정확한 상징과 사건으로 말하려는 것과 숫자로 소개된 영적인 뜻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계시록의 환상은 크게 4개의 환상이라는 그림언어의 묶음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제 1환상(1:9-3:22)은 일곱 개의 촛대로써 주님의 다양한 모든 교회를 의미하고, 제 2환상(4:1-16:21)은 일곱 인을 떼시는 주님의 행위로써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밝혀 주십니다. 한편 나팔은 세상과 교회에 경고를, 7 대접에 대한 주님이 취하신 행동은 이 세상을 온전히 심판하실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 3환상(17:1-20:15)에서 큰 성 바벨론은 세상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제 4환상(21:1-22:5) 새 예루살렘으로써 주님이 완성하신 최후에 이루실 교회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각 환상마다 명확한 의미를 이해하고 읽어야 합니다. 한편 그러면 그 시기는 언제인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계시록의 마지막 최후의 심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요한 사도 시대로부터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종말에 대한 언급은 대부분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시작하여 재림 때까지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시록을 이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Ⅱ. 계시록을 보는 다양한 해석의 관점에 대해여​

 

계시록을 보고 해석하는 여러 관점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을 해석하는 해석자들이 각자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자신들의 견해를 가지고 계시록을 해석하고 또 자신들의 목적을 따라 적용하라고 억지를 부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일반적인 원리를 떠나서 계시록을 해석하도록 하는 일이 오늘날 교회에 난무하고 있으니 매우 위엄함 일인 것입니다. 또 위험하다고 해서 계시록을 멀리할 것도 아닙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지금까지 계시록을 봐 왔던 신학적인 견해를 면밀히 살펴보고, 이에 대하여 비판할 것과 우리가 취해야 할 해석의 원리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66권 모든 성경이 다 그렇습니다만 특히 계시록은 더욱 주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몇 가지 비성경적인 해석법(과거주의, 미래주의, 역사주의 등등)이나 인간적인 해석법들을 간추려 정리하고, 신구약 전체가 동의하는 묵시문학적인 해석의 원리(영적인 역사주의)를 따라 계시록을 살펴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계시록에 대한 과거주의적 해석의 관점 ​

“계시록은 요한 시대의 글이야!” 이런 식의 해석의 관점이 있습니다. 즉 오늘날에는 상관없는 일들이라는 주장입니다. 즉 초대교회 시대에 이미 계시록의 말씀은 끝이 났다는 주장입니다. 초기 1-3세기에 이뤄질 일들이라는 말입니다. 로마-카톨릭 이전에 관한 내용이라고 주장을 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일어났던 교회와 세상에 관한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로마교황과 로마교회와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주장이었습니다. ​

이 견해를 우리는 <계시록에 대한 과거주의 견해>라고 말합니다. 이는 요한 시대에 겪어야 할 일들에 대한 예언이었으니, 세상의 권력이었던 로마제국이 어떻게 기독교에 굴복하게 됐는지를 보여주고, 교회가 승리한 결과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중세기의 로마교회는 계시록에서 제외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주장을 통해 종교개혁자들의 비난을 피하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즉 Protestant church에서 로마교황제도를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하고, 계시록의 짐승(13장)으로 상징하는 것은 바로 적그리스도인 로마교황청이라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방어하려는 차원으로 계시록의 해석을 <과거주의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후 교회는 계시록에 대한 관점을 과거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알카자르>라는 예수회 사제가 1614년 경 처음 이 관점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계시록에 대한 과거주의 해석은 이처럼 로마 카톨릭을 옹호하고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계시록의 내용은 로마 카톨릭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

이 견해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성경의 일반적인 원리에서 벗어나 모든 교회시대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지금 우리시대의 교회와 상관이 없다면 성경으로써 가치가 없는 것이고, 성령께서 주신 성경의 의미를 땅에 떨어뜨리는 관점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요한 사도가 살던 시대는 물론이거니와 지금 우리 시대의 교회와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교회에 주신 말씀이니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때가지 읽어야 할 주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계시록은 엄연하게 성경의 결론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계시록은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 있는 성도들과 교회를 향해 경고하시고, 위로하시고, 이끄시겠다는 약속과 같은 내용이 담긴 책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과거주의 해석의 관점>은 비성경적인 견해이며, 로마 카톨릭이 받아야 할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인간적인 견해일 뿐입니다.

  1. 계시록에 대한 미래주의적 해석의 관점​

과거주의적 관점과 달리 또 다른 관점이 있는데 이는 <미래주의적 관점>입니다. 이 관점은 오늘날 교회를 더욱 혼란케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계시록에 언급된 사건들이나 환상들은 교회가 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옮겨진 후에나 일어날 일들이니 현재 지상교회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의문이 드는 미래에 일어날 그 최후의 날에 집중하는 경향을 띄게 됩니다. 그러면서 계시록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취하여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적용해야 하는 그 건강한 계시록의 적용들이 사라지고 오직 최후에 일어날 미래에 대한 관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틈새를 이용하여 온갖 사이비종교와 이단들이 교회의 외향적인 탈을 쓰고 수많은 영혼들을 현혹시켜 멸망케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집단에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사로잡혀 있는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런 극악무도한 일이 자행되는 곳에는 항상 계시록에 대한 무지와 오해 된 미래주의적인 관점에 매몰된 사람들입니다. ​

로마교회를 방어하려던 예수회 사제였던 <리베라>라는 사람이 1603년경에 제안한 견해입니다. 그 주장은 계시록으로 교황제와 로마교회를 공격하던 Protestant church의 공격을 막기 위한 술책으로 주장했던 것입니다. 즉, 과거주의 주장해서처럼 로마교회는 13장의 짐승과 상관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미래에 있을, 최종적으로 일어날 사건을 기록한 것이니 계시록은 모두가 미래에 속한 얘길 뿐이라는 것입니다. 2-3장에 등장하는 7개의 교회는 시대마다 교회가 변질되어 가니까 7개의 교회들은 그 시대마다 그런 순서로 교회시대가 진행도리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7개 교회에 편지하신 주님이 제 4장에서 7개의 인과 나팔과 대접으로 상징하는 심판들이 시작되기도 전에 지상교회는 모두 휴거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4장-20장까지 펼쳐지는 각종 심판과 세상의 환란들과는 지상교회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게 바로 미래주의적 관점입니다. ​

또 다른 미래주의자들은 휴거하지 않는 가운데 환란을 교회가 다 겪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미래주의자들 안에서도 다양한 주장들이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어느 시대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성경이라면 성경적인 관점에서 멀리 벗어나고 마는 것입니다. 즉 예언의 일반적인 목적에서 벗어나 비성경적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언은 일반적으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는 성도들에게 믿음의 강화를 줍니다. 하지만 이런 인간적인 견해는 하나님 나라를 미래의 어떤 일들로 간주해 버리고 지금 이미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과 세례요한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 나라가 아직 임하지 않았으니 아직 하나님 나라가 아닌 교회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거짓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계1:6절에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요한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지상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일부입니다. 요한 사도는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자와 …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3) 또 요한은 “때가 가까움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미래의 어느 끝에 일어날 일을 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계시록은 지금 오늘날의 교회 시대를 향해 계시록에 나타난 영적인 의미를 깨닫고 적용하며 주님 다시 오실 날까지 인내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 미래주의자들의 주장은 비성경적인 모순점을 가지고 있으며, 계시록을 가지고 어리석은 성도들을 유혹하는 사이비교회와 이단들이 악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

 

  1. 영적인 역사주의 견해로 이해하고 적용하라.

계시록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재림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상교회들에게 예언된 말씀입니다. 이 계시록의 사건 하나하나가 역사의 사건 하나하나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건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상의 모든 교회가 계시록을 통해 <영적인 원리>를 제공받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 전체는 성도가 살아가야할 영적인 원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은 요한 시대였던 주님의 초림에서부터 재림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는 있는 모든 지상교회들을 대상으로 한 <영적인 원리>를 적용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통해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려 가시고, 당신의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 가시며, 이 세상을 최후에는 어떻게 심판하시고, 교회를 최후에는 어떻게 완성 해 가실지를 말씀하신 책이 요한계시록인 것입니다. ​

그리스도 부활 승천 이후의 모든 지상교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그대로 실행하시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단과 그 세력들을 다스려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지상교회는 영적싸움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연속적인 교회역사를 단계적으로, 또는 순차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내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계시록은 주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모든 교회가 살아가야 할 영적인 삶의 원리, 세상의 역사를 어떻게 지배하시는지, 주님의 통치원리를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 영적인 원리들에 대한 설명들이이 계시록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진정한 기능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이 땅에서 인내하고 견뎌내야 할 위대한 원리인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살아갈 삶의 원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록에서 말하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계시록의 목적인 것입니다.

 

  1. 주의해야 할 단순한 역사주의 해석의 관점​

<단순한 역사주의 견해>처럼 계시록의 환상이나 사건을 인류역사의 사건 하나하나에 결부시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입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하나의 환상이 어느 한 사건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 환상은 모든 시대의 지상교회가 들어야 하고 적용해야 삶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각 환상들은 하나하나 실제로 일어날 일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런 환상에 담김 영적인 의미와 영적인 원리를 지상교회가 적용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인을 떼실 때, 그리스도가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셔서 이끄신다는 영적인 의미입니다. 인, 나팔, 대접 등등의 사건들은 순서를 따라 일어난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12장에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묘사한 내용이 나옵니다. 다시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돌아간 내용이잖습니까? 그러니 순서적으로 일어날 환상이나 사건들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10장과 11장은 최후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만물의 끝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12장에서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하여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의 순서로 일어날 일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

사람들이 계시록을 볼 때 역사의 특정 사건에 적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비성경적인 방식의 적용입니다. 성경의 특정 진술을 특정 사실에 대등시키면 결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인류 역사를 모조리 적용해야 할 텐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주장은 언어도단입니다. 예를 들자면 적그리스도를 교황이라고 할 때도 있었지만, 한 때는 나폴레옹, 한 대는 UN사무총장, 심지어는 히틀러, 때로는 공산주의 우두머리를 적그리스도라고 교회에서 적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교회를 혼란에 빠지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계시록을 어설프게 해석하고 적용하니 사람들이 혼란에 바지고, 성경을 멀리하게 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런 적용들은 사람들이 계시록 읽기를 싫어하게 만들고, 단지 육적인 호기심을 유발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은 참된 계시록 해석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그럼 예를 봅시다. 특히 세대주의자들은 특정 사람이나 사건을 계시록의 환상과 숫자에 결부시킵니다. 영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144,000명에 속한 사람은 상징적인 숫자로 구약(12지파)과 신약(12사도)의 가르침을 받은 진정한 성도들의 모두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그 숫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이 해석은 이단들이 사용하는 악행과 결부되더라는 것입니다. 특히 666이라는 숫자는 짐승으로 표현된 순자입니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실제 물리적인 요소와 직접 연결합니다. 그래서 666표를 신체 내에 삽입하여 사용하는 반도체 신분증(veri-chip)과 같은 것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바코드라고 얼마나 소리 높여 외쳤습니까? 지금은 그들도 상요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참으로 계시록을 엉망으로 해석한 결과입니다. 666표는 그렇게 물리적으로, 어떤 현실에 직접적으로 연결해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와 상징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문맥상 666표는 불신자들을 의미합니다. 끝까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될 사람들입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이런 해석을 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환상들이나 어떤 숫자에 담긴 영적인 상징을 우리는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위와 같은 견해를 분별하고 <영적-역사주의>에 의하여 잘 해석하영 적용함으로써 계시록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취지대로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하겠습니다.

 

Ⅲ. 계시록의 구조와 주제를 붙잡아야 한다. ​

그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계시록은 성도로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분명 성경의 결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계시록의 구조와 주제를 붙잡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분명한 구조와 주제를 붙잡아야 여러 환상과 사건들의 전개를 파악하게 되고 , 거기에 담긴 <영적인 원리>를 건전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계시록의 주제 ​

 

본문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 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1-3) ​

첫 번째 주제는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것입니다. 첫 절에서 이미 책의 이름처럼 밝혀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 주님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지를 밝혀주시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시록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이 주님에게로, 주님은 천사에게로, 천사는 요한에게로, 요한은 교회의 성도들에게로 전달하는 흐름을 아주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3절에서 교회의 성도들에게 서로 읽혀주고, 서로 듣고, 함께 순종하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복이 되게 하려는 분명한 계시록의 목적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 주님은 주시고 받으시는 관계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즉 부활하실 때에도 우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셨다고 밝혀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행13:34)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 주셨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다스릴 권세였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라고 말입니다. 주신다는 것은 매우 특수 관계를 의미합니다. 이는 세안을 다스릴 권세였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아버지께 바칠 때가 있다고도 하셨던 것입니다.(고전15:24) 주님은 이처럼 받으실 때가 있으시고, 다시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실 때가 있으시다는 말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계시록을 예수 그리스도께 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다른 책과는 다르게 아주 독특한 면을 요한사도는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모습과 영광​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어떻게 일하시고, 교회와 함께 하시는 일을 맑혀주시고, 결국 계시록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어떤 모습으로 밝혀주고 있습니까? 요한에게 계시하실 때에 우리 주님은 “가슴에 금띠를 띠고, 얼굴은 해 같이 빛나고, 눈은 불 꽃 같고, 발은 빛난 주석과 같고, 그리고 발에 끌리는 하얀 옷을 입고 머리털은 희기가 양털 같고, 오른손에는 일 곱 별을 잡고, 일곱 촛대 사이에 서신 분”이라고 요한은 증언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인간다움보다는 영광스러운 빛을 발하시는 분이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와는 달랐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엄위하신 분이시며, 너무도 영광스러운 분으로서 요한에게는 커다란 두려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주님 앞에서 죽는 것 같았던 것입니다. “그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17절)고 말합니다. 바다 위에서 걸으실 때나, 변화산에서 우리 주님의 모습은 너무도 두려운 분이었는데 영광스러운 분이었습니다.(마17:6, 막4:41)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 앞에서 모두가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우리 주님은 매우 큰 권세와 영광을 지니신 모습으로 이 세상과 교회를 다스려 가시고 계신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

 

  1. 위로의 책, 요한계시록 ​

이제 주님은 어떤 영광 가운데 세상을 다스리시고 계시는지, 마지막 세상을 다스려 가실 때에는 주님이 어떤 분으로서 영광과 위엄으로 가득하셨는지를 계시록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이제 영광의 단계에 계신 것입니다. 부활하실 때의 영광도 보여주셨지만, 더욱더 크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부활과 승천과 하늘 보좌와 재림으로 이어지는 우리 주님의 영광의 단계에서 이처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계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에 걸맞은 다스림이 지금 지상교회 시대에 진행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계시록이 밝혀주려는 핵심내용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다그려 가실 분이 어떤 권세와 영광 속에 계시는지를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과 영적싸움 가운데 있는 지상의 모든 교회를 어떻게 보호하여 교회를 구원으로 완성해 가실지를 우리가 아는 것이 곧 계시록의 목적입니다. 세상을 어떻게 심판하여 가실지 계시록은 환상과 사건과 숫자라는 그림언어라는 방식으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계시록의 주제는 “지상교회를 우리 주님이 현재적으로 다스려 가시고, 세상과 만물을 현재적으로 통치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주님의 책입니다. 주님이 주신 책이며, 주님이 일하신다는 사실을 밝혀주는 책입니다. 주님이 온 세상과 교회를 다스리시는 역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살던 그 당시에도 그랬고, 그 이후 모든 교회들의 시대가 변해도 주님의 일관된 다스림과 심판, 그리고 교회를 구원으로 완성시켜 영원한 영화의 단계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 사실을 4개의 환상 묶음으로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결론과 적용​

 

교회는 계시록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로써 그 책임을 느끼고,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날마다 분별하여 보면서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신앙의 옳은 길을 걷도록 주신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오늘날 이 영적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계시록을 통해 주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요한계시록의 환상은 어떤 의미와 상징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은 지금도 영적전쟁으로 계속되고 있는 상황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승리한 천상교회가 아니라 아직은 우리가 지상교회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상교회는 엡6:12절에서 바울사도가 언급한 것처럼 영적인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던 이유입니다. 오늘날 세상과 지상교회는 지금도 계시록의 환상과 같은 싸움이 치혈하게 벌어지는, 바로 그 현장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교회를 보호하시고, 위로하시고, 최후에는 악한 대적들을 날마다 심판하여 가시고 계십니다. 이런 영적인 사실을 망각하지 말고,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이 과거의 어느 한 시대에만 주어진 책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먼 미래의 마지막 순간에만 적용되는 책으로 읽혀져야 할 책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계시록의 가르침대로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요한계시록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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